중학 3학년때 미술선생님은 무척이나 평범한 여선생님이었다.
외모도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고 몸매도 그리 잘빠진 편이 아니었다.
다만, 과목이 미술이란 점이 중3때 한참 벌떡벌떡(-_-;) 거리던 사춘기 녀석들을 사로잡았다.
그 당시는 치마두른 여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거나, 붓을 들고 스케치북앞에 앉아 있으면
무조건 천사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녀석들이 그 선생님을 사모했었다.
내 친구 태영이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는데 놈은 아주 심각하게 좋아했다.
(나 역시 16살 먹은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으나 여자를 보는 안목은 이미 마흔에 도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로 쓰리사이즈가 올바르지 못한 그 선생님은 내 사랑을 받지 못했다. 우후후)
아무튼 태영이 놈의 선생님에 대한 사모가 병적으로 깊어갔을 때 쯤이었다.
주말이라 늘어지게 누워 tv를 보고 있던중 놈에게 전화가 왔다.
"나 좀 도와줘 으흑"
몹시도 간절한 어조의 목소리였다.
놈의 집에 도착해 보니 방안엔 백지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커다란 카세트가 한대 놓여져있었다.
그리고 놈은 폐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다 -_-;
"야 뭐해?"
"오....영욱아....으흑"
놈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끌어 앉혔다.
날 구세주보듯 하는 놈을 보니 그리 기분나쁘진 않았지만 엄습해오는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 으흑..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운을 뗀 녀석은 자신과 선생님의 통화 계획이라는 타이틀 아래 작전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바로 카세트 테잎을 이용해 놈의 목소리를 녹음한 뒤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시간차 통화를 하려는
계획이었다.
난 놈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_-;
하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생님 역할을 내게 주었다.
"자..내가 선생님을 사모하는 한 익명의 학생이야. 넌 황쌤이고"
"...으음-_-;"
놈은 백지에다가 자신이 할 대사와 예상되는 선생님의 대사칸을 만들어 놓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
난 적응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자 놈은 발끈하며 화를 냈다.
"이눔아... 여보세요? 어? 누구니? 라고 해야지"
"..어..어 그래;; 여보세요;;..어 누구니;;;"
놈은 잽싸게 엎드려 방금의 대화를 빈칸에 적어넣었다.
다시 잽싸게 일어나더니 전화하는 시늉을 하며 다음 대사를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누군지 밝힐수가 없어요..."
"....음?;"
참으로 난처했다.
내 눈앞에 있는 태영이는 이미 예전의 태영이가 아니었다.
"그 다음은 응? 그 다음은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까?"
놈의 눈은 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글쎄;; 이름을 대라며 화내지 않을까?"
"황쌤은 화내지 않으실꺼야."
놈은 골똘히 고민한 결과...
"그래 무슨 일이니?" 와 같은 문장을 다음 빈칸에 채워넣었다.
난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눈 돌아간 놈을 설득시키기엔 내가 너무 무력했다.
한참동안의 실랑이(-_-;) 끝에 어느정도 놈의 대사와 예상 가능한 황쌤의 대사들이 빈칸을 채워져나갔다.
기억을 더듬어 거의 흡사하게 간추려 보자면 이러했다.
태영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 여보세요? 어 그래. 누구니?
태영 :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누군지 밝힐수가 없어요.
선생님 : 음 그래. 무슨일이니?
태영 : 선생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선생님 : 그래? 호호호 <- (내가 극구 말렸던 부분중에 하나였음-_-;;)
태영 : 이렇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좋아요.
선생님 : 니가 좋다니 이 선생님도 흐뭇하구나. <- (-_-;;;;;;;;;;)
태영 : 저도 흐뭇해요 선생님.
선생님 : 원 녀석도... (실현가능성이 점점 제로로 치닫고 있다.)
태영 : 근데 선생님 여쭤볼 말이 있어요.
선생님 : 응 그래 뭐니?
태영 : 선생님 애인 있어요? <- (이 전화의 최종 목적인 것 같음-_-;)
선생님 : 아니 없는데 호호호 (놈의 자신감이 이미 극에 달했음을 알수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놈이 직접 짠 대사 이건만 이미 기정 사실인것마냥 몹시 행복해했음..)
태영 : 저도 없어요.
선생님 : 그러니?
태영 : 전 오래전부터 선생님을 사랑해왔어요.
선생님 : (이 부분을 직접 듣는것이 이 전화의 종착점이다)
마지막 황쌤의 반응에 따라 이름을 밝힐것인가 안밝힐것인가를 결정 하는것이다.
놈은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누르곤 대사를 시작했다.
난 맞은편에 앉아서 입만 뻥끗거리며 황쌤의 대사를 했다.
내 대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놈의 대사가 이어졌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놈은 황쌤과 결혼 날짜라도 잡힌듯 땅을 치며 행복해 했다.
"이렇게 녹음된 목소리면 내 목소린지 쉽게 알아보지도 못할꺼야."
난 그쯤에서 놈을 말려야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미 녀석을 멈추게 할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놈은 테잎을 제일 앞으로 감은뒤 쉼호흡을 한 후, 전화기의 스피커폰 버튼을 켠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엔 나 조차도 긴장되 호흡이 빨라졌으니 놈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모습은 그다지 이상치 않았다.
잠시후 전화기 스피커에서 나지막한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인 듯 했다.
"여보세요?"
내 계획은 99.9% 정확할 것이라던 놈도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놈은 조심스럽게 카세트 테잎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태영이니?" (-_-;;;;;;;;;;;;;;;;)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누군지 밝힐수가 없어요..." (-_-;;;;)
"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근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울려? 너 태영이 맞지?"
"이렇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좋아요"
"야!... 김태영"
"저도 흐뭇해요 선생님" (이즈음에서 태영이는 약간 혼절한 상태였음)
"야 너 지금 뭐하는짓이야?"
"근데 선생님 여쭤볼 말이 있어요" (선생님이 무시당하고 있음-_-;;;;)
"...." (화가 단단히 난 상태인것 같았음;;)
"선생님 애인 있어요?"
"...김태영 너 내일 학교에서 보자" (전화가 끊겼음-_-;)
"저도 없어요..." (-_-;;;;;;;;;;;;;;;)
"전 오래전부터 선생님을......"
전화는 끊기고 테잎만 쓸쓸히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
"...너 이제 어떡할래;;"
안스러운 표정으로 놈을 쳐다보며 묻자 놈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애인이 없을꺼야 으흑흑"
".....-_-;;;;;;;;;;;;"
그 주 미술시간부터 놈은 모델이 되어 자주 나가기도 하고 황쌤의 사적인 심부름 기사역도 자주 수행하며 의외로 선생님과 가까이 지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건 세상 어느 여자나 싫어할 일은 아닌듯했다.
...다만 2학기에 접어들어 태영이놈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뒤, 놈은 황쌤을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다. -_-;;
"쌤은 왜 맨날 나만 이런거 시켜요?"
"뭣이?;;"
'이놈이 바람났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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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재밌네. 그거...
이맥21에서 옮김.
Dec 19, '01 4:01 AM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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