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고요한 지하철을 꿈꾸며...

-gajago- 2009. 12. 21. 23:40

지하철을 자주 타는 사람 중 누구는 짜증 하나가 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지하철에 TV 모니터가 등장, 눈과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나 영화 등이 소개돼 좋아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미치겠다며 인상을 콱쓰는 사람들도 많다. 

작년에 영화열차라는 것이 등장해 사람들이 깜찍한 발상이라며 손뼉을 짝짝 치기도했지만, 
지하철에서만 가질 수 있는 저만의 즐거움을 앗아 갔다며 화를 낸 사람도 있었다. 

매일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은 기껏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나, 자조하기도하지만 
그 나름의 은근한 기쁨도 있다. 

멋쟁이 언니를 훔쳐보는 것이나, 잘 생기기고 풋풋한 미소년을 감상하는 것, 
혹은 간밤의 짜릿한 순간들을 되새겨 음미하는 것 따위다. 

할 일 없어 남의 신문 들여다 보느라 고개를 너무 빼 불쾌감을 주는 이들도 있지만
깊은 생각에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이들도 있다. 

오늘 회사 가서 무슨 일로 칭찬 받을까, 간밤에 싸운 아내는 어떻게 달래야 하나, 
이 인간 아무개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등으로 말이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지하철 풍경을 좀더 그럴 듯 하게 만들어 준다. 
음탕한 짓 하는 인간들에 비하면 얼마나 가상한가. 

이 모든 것이 조용한 가운데서 이뤄진다. 잠깐의 달콤한 졸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느닷없는 모니터의 등장이라니. 

사실 모니터라는 것도 광고 전략의 하나일 따름이다. 
시민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주려고 지하철 공사에서 비싼 돈 들여 설치한 게 아니다. 
지하철 안팎을 광고로 도배를 하고서도 모자라 이제는 동영상으로 또 광고를 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시인 정호승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고요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숙시킬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도 격정 다음에는 고요함이 그 사랑을 성숙시키고 지속시켜 준다.
인생의 진정성은 시끄러운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데에 있다. 

석가도 고요한 나무 아래서 인간의 삶을 생각했고, 예수도 고요한 산상에서 인간의사랑을 생각했다.’ 

‘지하철, 고마해라 광고 마이 했다 아이가.’ 

입력시간 2001/08/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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