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조국(붉은 산) 3

-gajago- 2010. 5. 12. 20:29
태풍이 또 올라온다는군요. 여긴 그냥 비켜가고 일본이나 강타했으면...


  이튿날 아침이었다.
  여를 깨우러 오는 사람의 소리에 여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삵이 동구(洞口)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다는 것이었다.
여는 삵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상, 곧 가방을 수습하여 가지고, 삵이 넘어져 있는 데까지 달려갔다. 송 첨지의 장례식 때문에 모였던 사람 몇은 여의 뒤를 따라왔다.
  여는 보았다. 삵의 허리가 기역자로 뒤로 부러져서 밭고랑 위에 넘어져 있는 것을. 아직 약간의 온기는 있었다.

  "익호! 익호!"

  그러나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 여는 응급 수단을 취하였다. 그의 사지는 무섭게 경련되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익호! 정신 드나?" 

  그는 여의 얼굴을 보았다. 끝이 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었다.
겨우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는 갔었습니다."

  "어디를?"

  "그놈, 지주놈의 집에‥‥‥."

  "무어?"

  여는 눈물 나오려는 눈을 힘있게 감았다. 그리고 덥석, 그의 벌써 식어 가는 손을 잡았다. 잠시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의 사지에서는 무서운 경련이 끊임없이 일었다. 그것은 죽음의 경련이었다. 듣기 힘든 작은, 그의 소리가 또 그의 입에서 나왔다.

  "선생님."

  "왜?"

  "보고 싶어요. 전 보고 시‥‥‥."

  "무얼?"

  그는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말이 안 나왔다. 기운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그는 또다시 입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무얼?"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는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 감았던 눈을 고즈너기 떴다. 그 때에 삵도 눈도 번쩍 떴다. 그는 손을 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돌이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럴 힘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혀 끝에 모아 가지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왜?"

  "저것, 저것‥‥‥."

  "무얼?"

  "저기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선생님, 저게 뭐여요?"

  여(余)는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황막한 만주 벌판이 전개되어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 노래를 불러 주셔요. 마지막 소원‥‥‥. 노래를 해 주셔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여는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의 입에서는 창가(唱歌)가 흘러 나왔다.
여는 고즈너기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고즈너기 부르는 여의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숭엄한 노래는 울리어 나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벌 한편 구석에서는 밥벌레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엄숙하게 울렸다. 그 가운데 익호의 몸은 점점 식어 갔다.

020708..
가자고...


퓨~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나다지도제작사, 동해· 독도 올바른 표기   (0) 2010.05.12
보신탕의 계절  (0) 2010.05.12
조국(붉은 산) 2  (0) 2010.05.12
조국(붉은 산) 1  (0) 2010.05.12
인생의 쉼표   (0) 201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