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조국(붉은 산) 1

-gajago- 2010. 5. 12. 20:17
앞(238호)에서 중학교 국어책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무슨 글을 올릴까 망설이다가 지난 6월의 붉은 함성을
떠올리며, 월드컵의 뒷풀이 겸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가 됐던 만큼의 감동적인 글을 올립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바로, 김동인의
'조국(祖國)'... (길이 관계로 몇 편으로 나눠 보내 드립니다.)


조국(祖國, 원제: 붉은 산)
-어떤 의사의 수기

김동인(金東仁) 


그것은 여(余)가 만주(滿州)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風俗)도 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文明)의
세례(洗禮)를 받지 못한 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병도 조사할 겸해서, 일 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때에 ○○촌(村)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중략>

  여는 그 동네에서 한 십여 일 이상을, 일없이 매일 호별 방문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로 날을 보내며,
오래간만에 맛보는 평화적 기분을 향락하고 있었다. '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정익호'라는 인물을 본 것이 거기서이다.

  익호라는 인물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촌에서 아무도 몰랐다.
사투리를 살피면 경기 사투리인 듯하지만, 빠른 말로 재재거릴 때에는 영남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고, 싸움이라도 할 때에는 서북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런지라, 사투리로써 그의 고향을 짐작할 수 가 없었다.
쉬운 일본말도 알고, 한문 글자도 좀 알고, 중국말은 물론 꽤 하고, 쉬운 러시아말도 할 줄 아는 점으로 보면 이곳 저곳 숱하게 돌아다닌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의 경력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여余)가 ○○촌(村)에 가기 일 년쯤 전, 빈손으로, 이웃이라도 오듯 후닥닥 ○○촌에 나타났다 한다.
생김생김을 보면 얼굴이 쥐와 같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운이 늘 나타나 있으며,
발록한 코에는 코털이 밖으로까지 보이도록 길게 났고,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게 생겼고, 나이는 스물다섯에서 사십까지 임의로 볼 수 있으며, 그 몸이나 얼굴 생김이, 어디로 보든 남에게 미움을 사고 근접하지 못할
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장기는, 투전을 잘하고, 싸움 잘하고, 트집 잘 잡고, 칼부림 잘하고, 색시에게 덤벼들기 잘하는 것이라 한다.

  생김생김이 벌써 남에게 미움을 사게 생겼고, 거기다 하는 행동조차 변변ㅎ지 못한 것만이라, ○○촌에서는 아무도 그를 대척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하였다.
집이 없는 그였으나, 뉘 집에 잠이라도 자러 가면 그 집 주인은 두말 없이 다른 방으로 피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여 주곤 하였다. 그러면, 그는 이튿날 해가 낮이 되도록 실컷 잔 뒤에, 마치 제 집에서 일어나듯 느직이 일어나서 조반을 청하여 먹고는, 한 마디의 사례도 없이 나가 버린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 그의 이 청구에
응하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트집으로 싸움을 시작하고, 싸움을 하면 반드시 칼부림을 하였다.
동네의 처녀들이며 젊은 여인들은, 익호가 이 동네에 들어온 뒤부터는 마음 놓고 나다니지를 못하였다.
철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도 몇이 있었다.
  삵.
이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느덧 ○○촌(村)에서는 익호를 익호라 부르지 않고 삵이라 부르게 되었다.


태풍이 슬그머니 지나간 것 같습니다. 우리 님들께선 별고 없으시길...
편 한 밤 되시압.
 
020706..
가자고...


덧붙임,
저장실수로 다음 몇편이 그냥 지나갈 것 같습니다. 홋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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