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오늘이 三伏중의 첫날인 초복이군...
하지만 장마의 한켠에 서 있으므로 그리 덥지는 않을터...
그러나 어쨋든 때가 때이니 만큼 보신탕에 대해 한마디 해보자.
개고기 만큼 사람의 건강에 좋은 음식은 흔치 않으리라.
학술적, 영양학적 접근은 차치하고 라도(잘 모르니...^^) 오죽하면 이북에선 '뻬라그라 병'을
"개병"이라 할까?(뻬라그라 병: 영양실조--->개고기 먹으면 끝--->그래서 개병...)
그만큼 좋다는 얘긴데...
문제는 요즘~ 그걸 먹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무슨 야만인 취급을 당할 뱃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언제 부터일까?
한 15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역사적(?)인 868즈음 부터이다.
(868?--->86아시안게임, 88서울 올림픽...)
그 즈음부터 혐오 식품이라느니...
유럽등 선진국에선 개 잡아 먹는 일이 없다느니...
그래서 외국인들이 보면 야만인이라 한다느니... 미개인...등등등...
정부에서 앞장서서 계도(?) 하는 바람에 보신탕이란 간판이 사라지고
어정쩡한 보양탕, 영양탕(사실 그말이 그말 아닌가?)이란 간판이 건물을 장식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도 대로변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으쓱한 골목 안쪽에서만 숨어서...
이런 식으로 남들(외국인)에게 잘 보일려(다른 표현 방법이 없네그랴?) "눈가리고 아웅" 했다.
-이리하여 외국인 기자의 붓끝에서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해 안달..." 이라는 소리가 나오게 하다니 참 우습다.
그럴바엔 차라리 그 외국인 기자가 같은 기사에서 언급한 이런 말을 새겨 듣는 게 낫다.
"일부 외국인들은 보신탕을 먹어 본 뒤 맛이 뛰어나다. 돼지고기 구이보다 월등히 뛰어난 음식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설가 최일남 선생의 글:1988.9.8자 한겨레 신문의 '한겨레 논단' 인용)
그래서 세월은 흘러 지금처럼 보신탕 먹기위해선 용기가 필요한 지경까지 됐다.
그게 지금까지 쭈욱~ 이어져 오고...
서양의 모 여장관이 그랬다지?
개고기-----> 미개인이라고...
그 말이 회자 되면서 위와 같은 저두굴신(低頭屈身)하는 일이 생겨났고... 그런데 즈들은?
징그러운 달팽이(사실이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다 안다. 뽕잎위의 달팽이를 본 적 있는가?)를 먹지를 않나,
말고기를 갖은 방법으로 먹지를 않나...
즈덜이 안 먹는 걸 남들이 먹으면 야만인?
이게 무슨 해괴망칙한 기준이요, 시건방진 망발인가. 건방진 것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즈덜이 야만인이요, 미개인이다.
우리는 달팽이, 말고기는 안 먹으므로...ㅎㅎㅎ(물론 외국계 레스토랑은 말고...)
또 한쪽에선 그런다.
자기가 키우던 개를 어떻게 먹느냐고... 선하게 생긴 눈동자를 가진 개를...
그럼 자기가 키우지 않은 개는 괜찮다는 말인가.
아님 선한 눈동자 때문이라면 우리가 즐겨먹는 소고기는 어떤가.
선한 눈망울로 치자면 왕방울같은 두 눈을 껌뻑이는 소야 말로...
(아마 반대하는 사람들의 거의가 도회지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개는 애완용으로 많이 키우니 잘 알지만, 소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가 즐겨 먹던 개는 애완용개가 아니다.
그런 개는 물론, 진도개나 삽쌀개를 잡아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나 봤나?
어디까지나 고기를 먹기 위해서 막 키우는 말 그대로 "또옹 개~" 다.
서양 사람들도 자기가 타던 말을 잡아 먹을까? 그렇진 않을거다.
타인(외국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음식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다. 생활이고...
그걸 남이 왈가왈부 해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알아서 기는" 행위는...
민족적 자존심 문제다. 삼복은...?더워요...
010716...
가자고...
애국심도 관에서 배급하나?
위의 글 중에서 최일남 선생의 글을 인용하다 보니 님의 글중에 생각나는 글이 있어 마져 올린다.
물론 옛날 글이라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만 서두... 제헌절을 맞이하여 걍 올린다. ^ ^
옛날에 그랬었지...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가볍게 읽으면 좋지 뭐... 옛날을 떠 올리며...
글을 올리다 보니 옛날 그러한 행위를 따라하던 일이 생각나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관주도에 의한 그런 일을 따라하며, 마치 애국이나 하는 것처럼 착각아닌 착각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애국심도 관에서 배급하나
고치고 없앨 것도 많은 변화국면인데다가, 이런 자리에서 다뤄야 할 이야기도 쌔고 쌨다만,
엊그제 본지(한겨레 신문을 말함) 문화면에 실린 극장에서의 '대한뉴스'와 애국가도,
당장의 생활과 관련하여 그냥 보아 넘길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애국가가 더 문제다. 극장에서만이 아니다.
국기강하식에 곁들인 애국가를 들으며 가던 길을 멈춘 채 제자리에 우뚝 서서 부동자세를 취해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야릇하기 짝이 없다.
애국가에 대한 사랑과 존엄을 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전혀 감정이 우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또는 타인의 시선을 무의식의 강제로 받아들이며 차렷자세로 서 있을 때의 마음은 고약하기까지 하다.
극장에서는 애국가를 끝내고 육질적으로 짙은 러브신을 '감상' 할 수도 있다.
그런 때의 애국가는 '국가모독'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탄 사람은 오불관언이고, 걸어가던 사람만 발길을 멈춰야 하는 타율의 관습은
진짜 애국심과 어떻게 맞 닿을까? 그걸 시킨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진짜 애국의 일념에 불타 있을까?
무엄한 비애국적인 상념이 그럴 때마다 새록새록 솟아 오른다.
극장에서 애국가 상영은 유신 초기부터였다고 듣는다.
누군가 미 8군 영내극장에서 미국국가가 연주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당시의 문공부장관에게 건의한 내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국기강하식 때의 애국가 사정도 비슷하다.
78년, 정부는 '애국심 함양을 위해' 이 제도 아닌 제도를 국민간에 퍼뜨렸다.
그것이 지금껏 아무 저항없이 관례화 되어 왔다. 찬반으로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해당장관이 즉흥적인 발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면 그만이었으므로, 그 흔한 공청회 따위를 열어
골치를 썩일 것도 없었다. 애국하자는 데 어느 '비국민'이 감히 아니라고 덤빌 것인가.
그걸 시킨 사람 스스로는 극장에 갈 일도, 어디를 가든 다리품을 팔 일도 없을 것이다.
이 극장에서 본 철저한 정부홍보용 '대한뉴스'나 맛대가리 없는 '문화영화'를, 저 극장에서 또다시 지루하게
보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쿠션 좋은 고급차에 상반신을 파묻은 채, 백성들이 경기들린 아이들처럼
깜짝 놀라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걸 보고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그 백성들은 참으로 착했달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잘 따랐다.
82년 3월 지배기능 강화 발상에서 나온 반상회가 그렇고, 실상은 미국 텔레비젼의 올림픽 중계료를
조금 더 따내기 위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간 절약과 여름 건강을 내세워 서머타임제를
부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라도 그것들은 없어져야 한다. 일단 실시되고 있는 서머타임은 그렇다 치고,
애국심을 전매공사가 담배나 홍삼판매를 독점하듯 하는 착상은 거두는 게 좋다.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닥달하고 묶는 군사문화의 상징적인 얼개가, 바로 이런 것들의 생활화 강요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도 없다. 보아서 알겠지만, 극장에서 우르르 일어섰다가 우르르 앉는 관객들의 표정에,
애국은 이미 간데온데 없다. 저녁 여섯시의 거리에 우뚝우뚝 서는 시민들의 수도 초기보다는 훨씬 줄었으며,
나몰라라 하고 제갈길을 가는 시민이 더 많아졌다.
각종 선거 때마다 행정간섭의 온상이 되기 십상인 반상회도 아주 시들해졌다.
벌금 물기 싫어 나가는 수가 흔하다. 정보가 너무 많아 걱정인 시대에 이웃끼리의 정보 교환 명분도 객쩍은
소리이며, 친목 도모를 관이 관리한다는 것도 인정의 자연스런 오감을 관료화 하는 짓이다.
우선 일정시대의 '애국반상회'를 연상시킨다.
결국 애국의 규격화·화석화는, 민주주의의 이름에 어림없이 어긋나는 것임을 알라.
(1988. 6. 19일자 한겨레 신문의 '한겨레 논단'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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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옮기며 다시 읽다 보니, 우리가 현재 각 언론 방송에서 얻는 정보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당시엔 그게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그래서 모든 정보의 이면을 냉철히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각 매체에서 쏟아지는 정보도 적확히 보는 사람들 눈엔, 그리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 눈엔
얼마나 허구가 많을까.(정보 제공자와 전달자-언론-가 제각각 자기 입맛에 맛춰 짜깁기 해 옮기니...)
우습지도 않을는지 모른다. 소리개처럼 날카로운 안목을 키워야 하것다...
가자고...
그럼 승질나서 못사나?...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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