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님, 좋은 주말이 되셨을까요?
그랬으길 바라며... 오세암~ 계속 갑니다.
♣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
"누나, 이산의 나무들은 말이야, 갈대로 만든 자리를 세운 것 같아.
죽죽 하늘에 닿을 듯이 치솟았거든.
저기 저 언덕바지에 있는 전나무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누나, 아줌마 셋이가 대웅전에서 절을 하고 있어. 복 달라고, 명 달라고 비는 거야.
할머니 둘은 또 탑을 돌고 있어. 저 할머닌 뭘 달라고 저럴까? 극락 가게 해 달라고 그러겠지?
부처님도 참 성가시겠다 그치? 사람들이 자꾸자꾸 조르기만 하니까...
나같으면 부처님을 좀 즐겁게 해드리겠는데... 에이..."
"내가 누나의 댕기를 잡아 당긴게 아니야. 바람이었어. 바람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아유 답답하다, 답답해. 바람은 우리 눈에 안 보여. 비, 눈, 서리는 보이지.
그러나 바람은 안 보인단 말이야. 바람의 손자국, 발자국만 보여.
굴러가는 낙엽,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이 짚고 다니는 손자국 발자국만 보인단 말이야.
부처님도 못 보냐구? 그건 모르겠는데. 그래, 맞아. 부처님은 바람을 볼지도 몰라.
누나, 우리 스님한테 가서 그걸 물어 보자."
스님은 우물가에서 발을 닦고 있었다.
"스님, 하나 물어 봐도 돼?"
"무언데?"
"부처님 눈에는 바람이 보여?"
"바람이라니?"
"저기 저 전나무 가지를 흔드는 손님 말이야."
"부처님 눈에는...... 그래. 바람이 보이지."
"어떻게 바람이 보이지?"
"마음의 눈을 뜨고 계시니까."
"마음의 눈이란 것도 있어?"
"그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한테는 수많은 눈의 창문이 있단다.
지금 감이는 육신의 창문이 닫힌 거구, 길손이와 나는 마음의 창문이 닫혀 있는 거지.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하나하나 열리거든. 그 맨 안쪽 마지막 창까지를 연 분이 부처님이란다.
그땐 바람도 보이고 하늘 뒤란도 보이는 거지."
"스님, 나도 마음의 눈을 뜨고 싶어. 바람도 보고 하늘 뒤란도 보고 싶어.
그래서 우리 감이 누나한테 이 바깥 세상을 더 잘 말해 주고 싶어."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해. 나는 내일부터 공부하러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데 길손이 너도 따라갈래?"
"야, 신난다!"
길손이는 좋아라 깡총깡총 뛰었다.
"그러려면 감이 누나와 헤어져 있어야 하는데......"
"왜? 감이누나와 왜 함께 못 가는 거야?"
길손이의 얼굴에 금방 어둠이 널렸다.
"산이 험하기 때문에 감이가 거기에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거기가 어딘데?"
"마등령 중턱에 있는 관음암이다."
이때까지 말없이 옷섶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감이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거기에 머무를 건가요?"
"봄이 오면 내려와야지."
"그렇다면 전 여기 남아 있을게요. 우리 길손이를 데리고 가서 공부만 많이 시켜 주셔요."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텐데?"
"괜찮아요. 전 참을 수 있어요."
감이가 의외로 물러서는 바람에 스님의 걱정은 쉽게 풀렸다.
감이와 길손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스님은 내내 염려하고 있던 참이었다.
스님은 길손이를 데리고 암자로 가기로 마음먹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길손이가 장난이 심하여 절의 젊은 스님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감이는 눈이 멀어도 제법 부엌일도 거들고 해서 제 밥 값은 하는 편이었으나,
길손이는 날마다 말썽만 피울 뿐이었다.
밤에 이불에 오줌 싸는 일은 사흘에 한 번꼴...
조용해야 할 선방으로 날짐승을 몰아와서 우당탕거리는 일은 이틀에 한 번꼴...
법회 때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방귀를 뽕 소리가 나게 뀌지를 않나,
불개미를 잡아와서 스님들의 바짓가랑이 속으로 들여보내지를 않나.
♣물초롱 속에 구름을 넣어서...
길손이는 한사코 작은 물초롱을 들고 나섰다.
"거기에도 좋은 샘이 있다니까 그러는구나."
"스님 바보야. 내가 물 가져가는 것 같아?"
"그럼 물이 아니고 무엇이냐?"
"흰구름을 넣어 가지고 가는 거야. 요 앞날 개울에서 건져 왔거든."
"고 녀석 참......"
"스님, 저기 저 안개구름 속에서 우뚝 솟은 산봉우리 이름이 무어야?"
"귀떼기청봉이다."
"귀떼기청봉? 그럼 코떼기청봉도 있겠네."
길손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길손이의 웃음 소리가 메아리를 일구자 큰 노루, 작은 토끼가 귀를 세우고 달렸다.
굴러가는 메아리를 물어 오기나 할 것처럼.
길손이와 스님이 관음암에 당도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터라, 암자는 한동안 도망가는 산 짐승들의 발소리로 수선스러웠다.
"아냐, 아냐. 너희들이랑 함께 살려고 왔어. 달아나지마. 도망가지 마라니까!"
산양이며 장끼를 쫓아다니는 길손이의 뒤에서 스님은 조용히 염주를 굴렸다.
"고 녀석 참......"
좋은 주말 편히 쉬시길...
가자고 드림.
2002-01-19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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