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계속 갑니다. ^ ^
♣살며시 웃는 얼굴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이었다.
길손이가 아까부터 뒤란 맨 끝에 있는 골방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동안 장독대며 다락, 헛간까지를 다 뒤지고 아직 길손이의 손이 못 미친 곳은 이 골방 하나뿐이었다.
"그 방은 문둥병에 걸린 스님이 묵고 있다가 죽은 곳이란다."
언젠가 밥을 먹다 말고 길손이가 물었을 때 스님이 일러준 말이었다.
문둥병... 듣기만 해도 길손이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감이누나와 함께 얻어먹으면서 여기저기를 흘러 다녔을 때 가장 싫었던 이들이 문둥병자였었다.
"누나, 방도 무섭게 생겼지? 누나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래? 나 금방 들어갔다 나올게."
길손이는 감이 누나가 마치 곁에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까지 까딱해 보였다.
가만가만히 발꿈치를 들고 문쪽으로 다가갔다. 마룻장이 삐꺽거렸다.
길손이는 살며시 문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발로 문턱을 받치고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이 와당탕탕,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길손이가 문고리를 움켜쥔 채 마룻바닥에 넘어졌다.
도깨비가 떠다밀었는가 하고 두리번거려 보았으나 조용하기만 했다.
떨어진 문 사이로 골방 안이 내다보였다. 묵은 목침과 질화로가 나뒹굴어져 있었다.
길손이는 살금살금 골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방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에 걸려 있는 도롱이를 들어냈다. 그러자 갑자기 방안이 밝아졌다.
도롱이가 걸려 있던자리가 들창이었다.
"누나, 저 창 너머로 보이는 봉우리기 관음봉이야. 스님이 말해 주었어. 여기서 보니까 아주 바로 보이지?"
방을 나오려던 길손이는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한 폭을 보았다.
"누나, 가만. 벽에 그림이 있다. 머리에 관을 쓴 보살님이야. 연꽃에 떠받쳐서 서 있는걸?
살며시 웃고 있어."
길손이는 그림을 향해 절을 하였다.
"안녕하셔요. 전 길손이예요. 오늘 너무 떠들어서 미안해요."
길손이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문짝을 전처럼 기대 놓다 말고 다시 골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내일부터 놀러 와도 돼요?"
한참 있다가 길손이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안녕!"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이튿날 길손이는 아침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골방으로 달려갔다.
목침을 치우고 질화로를 들어냈다.
도롱이는 아예 마루 밑에다 쑤셔박아 버렸다. 비로 쓸고 걸레질도 하였다.
길손이는 그림 앞에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였다.
"계곡의 고드름이 하늘에서 늘어뜨린 동아줄 같아요. 스님은 김치를 꺼내다가
얼음 조각에 손가락을 베었어요. 보살님도 춥지요? 가만 있어요. 내가 솔가리 긁어와서 군불 넣어 드릴게요."
길손이는 그림 속에 계시는 분을 소리내어 웃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흉내를 내었다.
토끼가 귀를 세우고 뛰어가는 깡충거리는 걸음을, 목탁을 치면서 염불하는 스님의 흉내를,
그리고 슬며시 소리 안 나게 방귀를 뀌어 놓고서 살피기도 하였다.
"아유 냄새... 보살님이 뀌었지?"
그러나 그 분은 소리 없이 웃기만 하였다.
이래도 가물가물 웃고, 저래도 가물가물 웃는 그림 속의 보살님이 길손이는 마냥 좋았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게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약속하지요? 내 소원은... 내 소원은... 저......
엄마를......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저..... 엄...... 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날씨가 제법 춥군요. 바람이 쎄니 더 춥고...
여러님들, 감기 조심 하시압.
2002-01-23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