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려도 '오세암'은 간다.
가자고~ ^ ^
♣마음을 다해 부르면
흰구름이 우물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낮잠을 자는 오후였다.
그 시간에도 길손이는 골방에 와서 놀고 있었다.
"엄마, 삶은 밤이어요. 스님이 다섯 개를 주었어요. 내가 네 개를 먹었지만 가장 큰 것은 남겨 왔어요.
어서 잡수셔요. 참, 맛있어요."
"내 동무 흰구름이 어떻게 있는지 알아요? 이렇게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두레박을 풍덩 집어 넣었는데도 일어나지 않아요. 잠꾸러기지요?"
"엄마, 스님이 찾고 있어요. 얼른 갔다 올게 밤 잡숫고 계셔요. 안녕."
스님은 쌀을 씻고 있었다.
"그 방에 드나들지 말라고 말했지 않느냐."
"엄마가 있는데?"
"엄마라니?"
"우리 엄마......"
"탱화를 보고 하는 말이로군. 고 녀석 참...... 그건 그렇고 너 내일 혼자 있어야겠다."
"왜?"
"내가 저잣거리에 좀 다녀와야 할까부다."
"무엇 하러 가는데?"
"이것저것 구해 올 것이 많다."
"싫어. 나 혼자 있지 않을 테야."
"그러나 양식이 떨어졌는데 어떡하니?"
"나 혼자는 무섭단 말이야."
"무섭긴, 부처님도 계시고 관세음 보살님도 계시고 사대천왕도 있는데."
"금방 갔다 오는 거야?"
"그럼, 금방 오고말고. 길손아, 내일 내가 없는 동안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하고 관세음 보살님을 찾거라. 알았지?"
"그러면 관세음 보살님이 오셔?"
"오고말고. 네가 마음을 다하여 부르면 꼭 오시지."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인석아, 엄마가 아니고 관세음 보살님이라니까."
♣쌓인 눈이 마루에 닿다
스님은 부랴부랴 장터를 벗어 나오면서 또 한 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대낮인데도 바람이 자고 하늘이 가라앉은 것이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장사꾼들 서둘러서 짐 보퉁이를 꾸리고 있었다.
"큰 눈이 오겠는걸. 설악 쪽은 벌써 어두워졌어."
대장장 노인이 풀무에서 손을 놓으며 하는 말이 스님의 가슴을 더욱 죄었다.
스님은 입 인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소달구지 위에 올랐다가 다시 내렸다.
짐의 멜빵을 당기고 남이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 세 걸음을 서둘러서 떼어 놓았다.
그러나 눈은 스님이 버덩말에도 이르기 전에 쏟아졌다.
눈송이는 목화송이만씩 해서 금방 산과 들은 하얗게 덮였다. 처음 보는 폭설이었다.
이내 눈 속에 스님은 발목이 빠지고 정강이가 빠졌다.
"안 돼! 길손이가 혼자 있어! 먹을 것도 없는 암자에 어린아이만 혼자 있다고!"
스님은 정신이 반 나간 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길조차도 눈 속으로 숨어 버렸다.
스님은 부처님을 부르며, 길손이를 부르며 눈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스님이 눈을 떠보니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 안방이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가 왜 여기에 누워 있습니까?"
스님은 옆에서 짚신을 삼고 있는 노인한테 물었다.
"나무를 해오던 우리 아들이 눈 위에 쓰러져 있는 스님을 발견해서 업고 왔지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어찌나 눈이 많이 왔는지 쌓인 눈이 마루 끝에 닿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먹을 것이 하나도 있지 않은 암자에 혼자 있습니다."
"그 암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등령 고개턱에 있습니다."
"네에? 거기는 절대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쌓였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올라갑니까?"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스님은 그날부터 앓았다. 길손이를 부르며,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을 부르며...
저런~ 저걸 어째?...
님들,
편 한 밤 되시길...
2002-01-24
가자고...
글 올릴 당시인 02년 01월 24일에도 눈이 굉장이 많이 내렸었는데,
2010년02월12일 현재에도 전국이 폭설에 파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