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어느 가로수의 '항변'

-gajago- 2010. 9. 9. 00:08
세상 모든 사물은 누구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법.

그러나 오늘도 난 찻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온갖 차량들의 굉음에 귀가 먹는다.
매케한 매연에 가슴마저 시커멓다. 돌진하는 차량에 목숨마저 담보 잡힌 지 오래다.

내 친구들은 산좋고 물맑은 깊은 산중에서 사시사철 지저귀는 아름다운 새소리에 귀가 즐겁고,
시원하게 불어주는 미풍에 시름을 잊고 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빛깔도 선명한 예쁜 옷으로 자신을 뽑낸다.

내 친구들에겐 좋은 벗들도 참 많다.
부엉이며, 뻐꾸기며, 비둘기며, 소쩍새며... 거기에 선선한 바람까지...
친구들은 그들에게 둥지도 돼 주며 편히 쉴곳을 제공한다.
그들 또한 내 친구들의 선한 벗이 돼 준다.
이 얼마나 부럽고 아름다운 관계인가.

상부상조...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마냥 행복해 한다.

그러나 난...
인간들의 욕심으로 그 자리에서 옮겨져 오늘도 이렇게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이곳의 한 친구는 술취한 어떤 미친 놈이 들이받는 바람에 세상을 하직했다.
또 어떤 친구는 인간들의 온갖 추접한 배설물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인간들 가까이 길가에 있는 우리는 내 목숨이 내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옮겨져와 그들에게 시달리다 그들의 손에 오늘도 이렇게 서서히 죽어간다.

030917..

가자고...


한참 밀리는 차안에서 시꺼멓게 공해에 찌든 길가의 가로수를 보니 참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마디...
긁적였다.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