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4. 최태원 /'철인 멈췄다' 최태원의 마지막 눈물

-gajago- 2010. 9. 26. 17:21
'철인 멈췄다' 최태원의 마지막 눈물 2002.09.11 (수) 15:08

SK ‘철인’ 최태원(32)의 연속경기 출장 신화가 마침내 끝났다.
그는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출장기회를 잡지 못하고
95년 4월 16일부터 이어오던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1014경기에서 마감했다.

6-5로 간신히 앞선 8회에 신언호 수석코치가 다가와
"오늘은 박빙의 승부라 출장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며 다독이자,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9회말에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자 덕아웃에서 하염없이 가슴이 저려왔다.
철인은 9회말 그라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이 없었다.
쉼 없이 달려온 8년의 세월.
그간의 기억들이 잠실구장의 조명 아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언젠가는 끝날 일. 마음을 정리하니 속이 그렇게 시원해질 수가 없었다.

덕아웃에서 소리를 지르며 팀 승리를 위해 응원을 보냈다.
9회말이 끝나는 순간 그는 맨 먼저 덕아웃을 박차고 나갔다.
수비를 끝낸 동료들이 들어오자 맨 앞쪽에서 하이파이브로 맞이했다.
남자다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3루 덕아웃 앞에서 그를 둘러싸고 박수를 쳤다.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그는 유일하게 웃었다. 물론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덕아웃에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할말이 많았지만 "할말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졌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쏟았다.
'이제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시원섭섭했다.
철인은 그렇게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었다.

숙소 식당에는 맥주가 놓여있었다.
강 감독이 마련한 자리였다. 강 감독도 후배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최태원은 그 자리에서 "감독님과 여러분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SK가 강팀이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치자"
고 말한 뒤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최태원은 숙소에 들어가 샤워를 한 뒤 조용히 가방을 열었다. 얼마 전에 구입한 책을 꺼냈다.
메이저리그의 명포수 요기 베라가 쓴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라는 자서전이었다.
그는 이제 울지 않기로 했다.
연속경기 출장기록은 끝났지만 선수생활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요기 베라의 말을 음미하며 늦은 밤까지 책을 읽어내려갔다.

이재국기자
keystone@sportsseoul.com

 "철인 멈췄다" 최태원의 마지막 눈물
네티즌칼럼 철인 최태원선수에게
최태원"굿바이 그라운드"


'철인, 물러나다.'

SK '철인' 최태원(33)이 올시즌을 끝으로 11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최태원은 지난 2일 기아와의 홈경기를 마친 후,
구단에 은퇴의사를 전달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밝혔다.
SK는 최태원의 의사를 받아 들여 내년시즌 코치 연수를 비롯한 지도자로서의 길을 열어줄 계획이다.

성남고-경희대를 거쳐 지난 93년 신인 2차지명 1순위로 쌍방울에 입단한 최태원은 95년 4월16일부터 2002년 9월8일까지 7년동안 무려 1,014 경기에 연속 출장하는 대기록을 세워 '철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지난 95년에는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했고, 97년에는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차지하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프로 데뷔후 올해까지 11시즌동안 1,284 경기에 출전, 통산 타율 2할6푼8리 1,133안타 24홈런 344타점 130도루를 기록했다.
최태원은 "그동안 팬들과 가족, 동료들의 따뜻한 관심속에 행복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며
"열심히 공부해 앞으로 좋은 지도자로 팬 앞에 서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최태원은 5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앞서 팬들에게 은퇴 인사를 하며 내년 미국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공식 은퇴식은 내년에 가질 예정이다.

/전용준
toto@sportstoday.co.kr

최태원"굿바이 그라운드"

철인 최태원은 이렇게 물러나는가.
윗 글들에서 이야기했듯이 너무 아쉬움이 많은 재목이다. 더우기 체력의 저하나 극심한 부진에 의한
본인 스스로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닌, 강병철 전 감독등의 타의에 의한 밀려남이라 아쉬움이 더하다.
윗글에도 이야기하듯 서른 세 살의 너무 창창한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다니...

예전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
사람이 어떠한 목표를 상실한다거나 포기했을때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마련이다.- 실력이 눈에 띄게 저하된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한 목표 상실 후, 자연적인 물갈이 같이 경기에서 소외된 그러한 형국이다.
본인의 뜻이 있으되 경기에 나갈 수 조차 없는 분위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최태원의 입장이 안타깝고 가슴아프다.

다시 어느 누구가 최태원의 뒤를 이어 최태원과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길까. 어느 시일에...
참으로 답답하다.

그래, 이왕 저렇게 결정한 것, 현역선수보다 -코치가 된 최태원보다 더 나이많은 선수가 있을 것이다-
더 젊은 코치가 현역시절의 자신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이룰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쉬움을 더 크게 보상받기를...

아마 최태원은 현재까지와 같은 성실성과 투지로 지도자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태원의 저러한 결과 -은퇴- 를 야기하게 한 장본인인 강병철 전 감독은 야구인생의 가장 큰 오점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최태원의 은퇴결정을 들은 강병철 전 SK 감독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031006..
가자고...

[스포츠 라운지] '철인' 최태원 이젠 새인생

마음 먹은 목표를 달성하고 은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운동을 시작한 선수들은 누구나 큰 뜻을 품고 프로무대에 뛰어든다. 하지만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기는 커녕 경쟁에서 밀리거나 부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유니폼을 벗어야만 한다.

 

7년 6개월간 1014경기 연속출장

프로야구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철인' 최태원(33 · SK)은 동료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한껏 부러움을 샀다. 마음먹은 것을 이루고 떠나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신인 2차지명 1순위로 프로야구 쌍방울에 입단한 그는 연속 출장기록 경신을 어렴풋이 목표로 가슴에 새겼고, 95년 주전자리를 꿰차게 되자 그 뜻을 곧추 세웠다. 결국 그는 해냈다.
95년 4월16일부터 지난해 9월10일까지 7년6개월에 걸쳐 1014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유의 성실성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한국 프로야구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한국 야구의 역사가 짧지만 이런 기록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근성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 끈기가 필요한 이 기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즘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다.
올 시즌 33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던 아쉬움 탓도, 은퇴 후유증도 아니다.
지난 10월25일 시즌 내내 돌풍을 일으킨 소속팀이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에서 져

창단 첫 우승의 꿈을 끝내 접는 모습이 아직도 동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기 위해 부상을 당해도 방망이를 휘두르고 공을 잡았다. 때문에 몸에 무리가 많이 왔다.
야구선수에게 33세 은퇴는 비교적 이른 편이고, 더구나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선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기록 세운 대신 선수생명 줄어들어

지난 8년간 많은 고비가 있었다. 무엇보다 부상이 끊이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96년 LG전에서 왼쪽 손목이 공에 맞아 한동안 고생했다. 손이 너무 부어서 글러브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지만 ‘악바리’라는 별명답게 진통제 주사를 맞고 출장했다. 한 달을 그렇게 보냈다.

98년에는 팔꿈치 인대를 다쳐 팔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하며 시즌을 마쳤다.

회복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결과적으로 대기록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출장한 것이 선수생명을 단축한 셈이 됐다.

“영원히 야구선수를 할 것 같았는데….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니까요.”

 

그는 타고난 야구광이다.

부모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갖고 놀라고 글러브를 사줬다.

“야구가 무조건 좋더군요. 시간만 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거나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그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쳐 선수로 그라운드를 마음대로 뛰고 싶었다.
당시 그가 다니던 문성초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다.

단식을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모를 설득했다.
뒤늦게 6학년 2학기 때 야구부가 있는 미성초등학교로 전학해 꿈에 그리던 선수가 됐다.

그러나 운동선수로서는 키가 작아 후보로 맴돌았다.

태권도 선수로 한 체급을 10연패했던 아버지 최영열(58· 경희대 태권도학과 교수)씨와 소프트볼 선수였던 어머니 양용자(57)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체력과 그만의 인내와 고집으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은퇴를 결정한 뒤 “이젠 유니폼을 벗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픔이 복받치기도 했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어깨를 활짝 펴고 있다.

 

다음 목표는 지도자.
내년 미국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할 예정이다.
그래서 요즘 영어 개인교습을 받느라 분주하다.

 

프로필

생년월일:1970년 8월19일
포지션:내야수(우투·우타)
체격:178㎝ 74㎏
별명:악바리,찐뜩이
경력:1989년 경희대 입학
1993년 쌍방울 입단
1995년 최다안타(147개)
1997년 골든글러브(2루수)
2002년 9월 연속출장 기록 중단(1014경기)

 

◆ 최태원 기록의 의미

야구 기록 가운데 연속 출장 기록이 가장 깨기 힘든 것으로 꼽힌다.
홈런 등 타격 기록은 컨디션 난조로 인해 일시적인 부진에 빠져도 몰아치기로 만회할 수 있지만 연속

출장 기록은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에게는 ‘철인’이라는 찬사가 따라 다닌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연속 출장 기록은 2632경기(1982년 5월30∼98년 9월19일)로 칼 립켄 주니어

(전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세웠다.

그는 아직도 미국 야구선수 가운데 가장 국민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일본에서는 기누가사 사치오(전 히로시마)가 2215경기(70년 10월19∼87년 10월22일)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최태원의 기록(1014경기)은 미국과 일본에는 못미치지만 1000경기 이상 연속 출장 기록을 지닌 선수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6명뿐이라는 점에 견주면 의미가 크다.
67년 역사의 일본에서도 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2003/11/01 <대한매일 제공>

영원한 야구철인 최태원 이젠 지도자

 

1. 최태원 / 스스로 판단하라?

2. 최태원 / 어느 투표 결과

3. 최태원 / 야구가 야구같지 않은 이유 [1]

4. 최태원 /'철인 멈췄다' 최태원의 마지막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