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장의 일기=====
3박 4일...그 길었던 이별연습(1)--->메거진 16호.
★2000.10.10←첫 째날...
☆아침(회사)
→운명의 날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너무나 평범하게...
부서 업무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의료원 건강의학센타에서 바쁘지 않으면 오후 2시까지 나와달라는 메모가 책상에 붙어 있었다.
전화를 해서 물어 보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니라면서 가슴 CT촬영 사진에서 뭔가가 보이니
설명을 들어 보는게 좋겠다 한다.
좀 찜찜하다. 하지만 아직 젊은데 뭐 큰일이야 있겠나?
시간 맞춰 가기는 해야 겠지만 이것저것 바쁜 일도 많은데... 정말 귀찮다.
☆오전 10시 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대문시장에 나갈 일이 있는데 오랫만에 밖에서 점심이나 함께 먹자고...
병원의 전화를 받은 직후라 그런지 왠지 아내에게 잘 해주고 싶었다.
"그래, 나와서 함께 점심 먹자. 이렇게 따로 밖에서 만나는것도 오랜만이지?"
아내에겐 지난 번 받은 건강검진 결과 때문에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며 누구나 으례히 가는 것
인양 가볍게 얘기 했지만 아내의 얼굴엔 순간 불안이 스쳤다. CT 촬영 부분에 대해선 말도 안했는데...
아내는 더 이상 내색않고 면담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전화해 달라는 당부만 하였다.
☆오후 2시 05분...
건강의학센타의 전문의를 만나 면담했다.
다른곳은 모두 깨끗하지만 기관지가 양쪽폐로 갈라지는 곳에 가로 2cm, 세로1.8cm정도 임파선이
부어 있단다. '왜 부었지?'
그래서 어떡해야 하는가 물었더니, 의사는 별일이 아니라 하면서도 호흡기 내과에 외래예약을 해 놓았으니 가보라는 말만 했다. '우째~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밖에 나오니 간호사가 영양면담이랑 스포츠의학 면담도 하란다. 이런~?
이어지는 간호사의 말을 거의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호흡기 내과를 서둘러 찾았다.
☆오후 3시 30분...호흡기 내과.
환자가 밀린 관계로 20여분 기다려서 들어가 보니
담당의가 컴퓨터 화면에 CT사진을 띄워 놓은 채 들여다 보고 있다.
화면을 이리저리 바꿔 보다가 탄성을 내지른다.
"아~ 이것 때문에 이리 보낸거군요" (순간 어두운 표정이 스치는 듯 하다)
"담배는 얼마나 피우시죠?"
"글쎄요... 하루 한 갑 약간 안됩니다."
(이런 대답을 너무나 천연덕스레 하는 내가 얼마나 혐오스럽던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화면을 쳐다보기 시작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급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저 그림이 무슨 뜻이지요? 악성종양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마치 수긍이라도 하는 것처럼...)
"음~ 드문 경우인데..." 하며 혼잣말처럼 짧게 한마디 내뱉더니 다시 생각에 잠긴다.
"가능성은 얼마나...?"
"글쎄요...3대7?, 6대4?..."
무언가에 한 대 맞은듯 하다.
가까스로 크게 심호흡하면서 다시 물었다.
"악성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죠?"
"그렇다면 바로 투병 생활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조직검사부터 해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입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조치해 놓을테니 서둘러 주십시오."
그 다음에도 그는 뭐라 얘기하고 여기저기 전화도 했지만 내 귀엔 더 이상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맞아! 언젠가는 이런 순간에 부닥치게 되어 있었어. 왜 이제서야 그걸 알게 되었지?
애써 외면하려 해도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 이란것이 오래전부터 날 기다려 왔던거야.
그런데 오늘...이런 방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오후 4시 30분...
차로 돌아오니 핸드폰에 남겨진 아내의 음성 메세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줄 알면서 왜 이렇게 전화가 없느냐고...
'어떻게 이 얘기를 한다?'
'내일중에 입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사무실쪽으로 차를 모는데 도로 주변의 풍경, 차들, 지나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낯설게만 느껴진다.
펄떡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의사와의 면담내용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본다.
좀 젊어보이지만 나름대로의 전문성과 경험면에서 자신감도 있어 보이고, 신중해 보이기도 하고...
일단 신뢰가 가는 의사인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하는 바를 잘 숨기지 못하는 타입 같군... 그 점은 나랑 비슷해...
아까 3대7, 4대6...어쩌구 할 때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듯 했어.
그 사람은 나쁜 쪽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는게 분명해.
다들 이렇게 끝나는 것이었던가?
이토록 허망하게 끝나고 말 것을 무엇때문에 그렇게 많은 인연을 만들고, 하루에 몇 번씩 웃고,
울고 화내며 살아왔나 싶다. 결국은 한치 앞도 못보고 하루살이처럼 살아온 인생인 것을 말이다.
중1, 초등 5학년... 애들이 너무 어리다.
지금까지 제대로 한 번 안아주지도 않으면서 엄하게만 굴려고 했지...
녀석들은 아버지없는 상처를 잘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아내는 이제 모든 짐을 혼자져야 하겠지? 남은 자의 슬픔이 훨씬 클텐데...
자존심이 강해서 친구들이 남편얘기만 해도 상처받고 울지나 않을까?
부모님은... 아~ 내가 제일 큰 의지의 대상인데... 내가 없으면 얼마나 버티실까?
이게 정말 이별의 순간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지금 난 이별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오후 6시 30분...
윗분들께 입원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씀드리려 했지만 입을 떼는 순간부터 줄곳 감정억제가 안됐다.
이런 바보같이...
'황당하실거야, 나도 이렇게 황당한데...'
모두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설마 별일 있을라고?" 하시며 위로를 해 주신다.
계속 있다간 사람들 앞에서 자꾸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봐 부서 직원들에게 가볍게 인사만 나눈 후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자꾸 뒤돌아 보인다.
이 계단, 이 복도를 다시 밟을 수 있을까? 정들었던 저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오후 8시...
한바탕 폭우가 쏟아진 다음이라 그런지 도로는 귀가하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나로서는 얼마남지 않은 이 귀중한 시간을 혼잡한 차들 속에 갇혀 하릴없이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니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그리고 몇 년전부터 아내가 가장의 책임론을 들먹이며 금연할 것을 그렇게 요구 했었는데,
왜 그걸 들어주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까지 몰려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이럴 때 적합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쨋든 며칠 후면 내 앞에 놓여진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가야할 지 판가름 날 것이다.
진작 금연이라도 했더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끝없는 후회와 자책속에 차는 어느 덧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오후 9시...집...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면서 검진 결과를 묻는다.
"별 것 아닌거 같은데,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나봐. 그래서 내일 입원하기로 했어."
"뭐가 잘 못 됐는데?"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CT촬영에 뭔가가 있나봐."
"심각해?"
"아직 잘 몰라."
얼른 외면하고 피곤하다며 안방으로 들어와 자는 척 했다.
눕기는 했지만 자꾸 눈물이 난다.
왜 그럴까?
자기 연민일까? 죽음이 두려워서?
글쎄 아직은 그것도 실감이 안난다.
보라구! 난 이렇게 쌩쌩 하잖아?
☆자정...12시.
잠시 거실로 나갔다. 잠든 둘째의 모습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남아 있는 자에 대한 미안함...
나로 인해 받을 그 모든 상처에 대한 연민...
평범한 가정이 하루아침에 풍지박산 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
정말 미안하다.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을 남편, 아버지로 만나 이런 일을 당하다니...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모두가 후회스럽다.
마흔을 넘긴 나이라면 적어도 한 달에 몇 번쯤은 이런 일에 대해 생각도 하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을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을...
도대체 난 그 동안 뭘 하고 살았나?
뭘 하다가 막판에 몰려서야 그 동안의 무신경, 무관심에 대한 후회로 갈팡질팡 하고 있는가 말이다.
미안하다...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런 바보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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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보험사의 소책자에서 옮김... 2, 3, 4탄 계속...
나의 뒷모습을 돌아볼 때~다.
010612.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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