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장의 일기=====
3박 4일...그 길었던 이별연습(2)--->메거진 17호
★2000.10.11일←둘째 날...
☆아침 6시 반...
아내가 출근하면서 묻는다.
"오늘 몇 시 까지 병원에 가야 돼?"
"10시쯤 오라고 그랬어."
아이들이 학교가면서 묻는다.
"아빠! 오늘은 왜 출근 안하세요?"
"으응~ 따로 볼일이 있어서..."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하지만 도저히 아이들의 눈을 바로 볼 자신이 없다.
9시 반쯤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3시쯤 병실이 날테니 그때까지 오란다.
10시부터 쇼파에 멍청이 앉아 내 존재여부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돌아갈 세상을 바라 본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틱~틱~ 거리며 쉼없이 돌아가는 벽시계...
시간은 왜이리 빨리 흐르는가?
☆오후 2시...
이제 병원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때 그때도 지금과 같은 가정, 이 모습 그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던 과거의 마지막 순간이 되고 마는 걸까?
모든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다. 안방, 거실, 아이들 방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소품 하나하나
가구 하나하나에 얽힌 기억과 또 현재의 모습을 머리속에 담으려 애써 본다.
아! 거실벽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
작년 겨울. 동네에서 가족사진하나 안 걸린집은 우리밖에 없다며 졸라대는 아내의 성화에 밀려 찍은...
그 사진속 얼굴 하나하나를 떨리는 손길로 다시한 번 쓰다듬어 본다.
'그래... 이때가 좋았어. 행복한 한 때였지...'
병원으로 가기위해 차를 몰고 아파트를 나선다.
신호대기선 앞에 내 차와 나란히 머리를 대고있는 옆차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뒤늦은 휴가로 가족들과 가을 산행이라도 나선 모양이다.
모두 모자로 한 껏 가을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너무 부럽고 행복하게 보인다.
그렇게 권태롭고, 불만스레 여겨지던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다시 한 번 가슴 아래가 허물어 지면서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그래...빨리 병원에 가자!
거기있는 아픈 사람들 속으로 숨으면 마음이 좀 안정될지도 몰라.
☆오후 3시 병원...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에 올라가니 외출에서 막 돌아온 듯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언제부터 입원하셨습니까?"
"오늘이 5일째인데 선생이 세번 째 손님이오. 헌데 왜 들어왔소?"
"CT촬영에서 뭐가 나왔다고 해서 확인차..."
"저런~ 젊어 보이시는데...괜찮겠지요. 처음엔 굉장히 불안하다 며칠 지나면 괜찮을게요."
그는 고참답게 여유가 있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오더니 링겔을 꽂아준다.
"오늘 오후 늦게 CT촬영이 있으니 금식 하시고..."
"수술은 언제쯤?"
"글쎄요~ 모레쯤 할 것 같은데... 오늘과 내일은 일반검사부터 하구요."
☆오후 5시 병원...
회진온 담당의에게 뭔가를 꼬치꼬치 물으며 따라나갔던 아내는 한참 후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막연했던 불안감이 현실적 공포로 다가왔으리라.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볼 요량으로 억지로 한마디 던졌다.
"설마 별일 있겠어?"
언제부터인가 우린 서로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자꾸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솟아 오르는지...
'미안하오, 여보!'
저녘 8시쯤 회사 직원들과 처가 식구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녀갔다.
밤 10시... 본관 2층으로 가서 정밀 CT촬영을 했다.
특수물감을 혈관에 주입하고 그것이 몸속에 퍼지는 현상을 촬영하면 훨씬 정교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나?
'사진이 정교할 수록 치료 가능성이 높다는거야 뭐야?'
하루도 안 지났건만 끊임없는 후회와 두려움에 나는 벌써 지쳐가기 시작했다.
010613.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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