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소나기 3

-gajago- 2010. 6. 10. 00:20

그런 일이 있은 후 한동안 소녀의 모습은 뵈지 않았다. 매일같이 개울가로 달려와 봐도 뵈지 않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살피기도 했다. 남 몰래 5학년 여자 반을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뵈지 않았다.
 그날도 소년은 주머니 속 흰 조약돌만 만지작거리며 개울가로 나왔다.
그랬더니, 이 쪽 개울둑에 소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소년은 가슴부터 두근거렸다. 
 

 "그 동안 앓았다." 
 

 어쩐지 소녀의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그 날, 소나기 맞은 탓 아니냐?"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인제 다 낫냐?"
 "아직도‥‥‥"
 "그럼 누워 있어야지."
 "하도 갑갑해서 나왔다. ‥‥‥참, 그 날 재밌었어.‥‥‥"
 "그런데 그 날 어디서 이런 물이 들었는지 잘 지지 않는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해 냈다. 그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 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꼈다.
 갈림길에서 소녀는 
 

 "저 오늘 아침에 우리 집에서 대추를 땄다. 추석에 제사 지내려고‥‥‥" 
 

 대추 한 줌을 내준다. 소년은 주춤한다. 
 

 "맛봐라.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심었다는데, 아주 달다." 
 

 소년은 두 손을 오그려 내밀며, 
 

 "참, 알도 굵다!"
 "그리고 저, 우리 이번 추석을 지내고선 집을 내주게 됐어." 
 

 소년은 소녀네가 이사해 오기 전에 벌써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윤 초시 손자가 서울서 사업에 실패해 가지고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게 된 모양이었다. 

  

 "왜 그런지 난 이사 가는 게 싫어졌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설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021010..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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